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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가을에 관한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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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참 좋다.

괜시리 센치해진다.

가을타는 남자라서 음악이 좋아지고 한번 읽지 않던 시를 찾는다.

가을시 몇 개 찾아서 올려본다.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1] 황소[2]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낙엽 [落葉] - 레미 드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을날 - 헤르만 헤세

숲 속의 나뭇가지 금빛에 타오르는
내 사랑스런 그이와
몇 번이나 거닐던 길을
이렇게 나 홀로 거닌다

내가 영원히 간직하던
행복과 번민이
이토록 즐거운 가을날에
향기로운 저편 멀리 사라져 간다

풀잎 타는 연기 속
동네 아이들 노닥이는
나는 그곳에서 노래 부른다
아이들과 선율을 맞추면서 

 

 

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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